"쓰러질 뻔했다"…임윤찬 매직에 빠진 40분

입력 2023-11-27 17:58   수정 2023-12-05 16:48


“음악은 사람의 영혼에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베토벤이 남긴 글이다. 다른 이에게 뜨거운 열정과 강렬한 전율을 전할 때 비로소 음악은 빛이 난다는 얘기다.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19) 협연의 뮌헨필하모닉 내한 공연은 베토벤이 말한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임윤찬의 연주에 한 중년 여성은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훔쳤고, 20대 여성들은 “너무 좋아서 쓰러질 뻔했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명훈(70)이 이끈 뮌헨필 연주에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임윤찬이 들려준 곡은 요제피네란 여인에 대한 사랑이 담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이 작품은 피아노 홀로 첫 소절을 연주하는데, 임윤찬은 유려한 터치와 싱그러운 색채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12일 베를린필하모닉과 같은 곡을 협연한 조성진이 세련된 색채와 섬세한 터치로 베토벤의 서정을 살려냈다면, 임윤찬은 톡톡 튀는 명료한 타건과 저돌적인 표현으로 ‘살아 숨 쉬는 베토벤’을 들려줬다.

오로지 손의 무게로 만들어낸 간결한 리듬 표현과 수십 개의 음표가 쏟아지는 순간에도 특정 음을 명확히 짚어내는 집중력이 돋보였다. 건반을 스치는 듯한 부드러운 터치로 베토벤의 시적인 정취를 노래하다가 돌연 머리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건반을 내려치며 만들어내는 박진감은 관객의 숨을 앗아갔다.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을 조율하면서 소리의 명도까지 변화시키는 연주에선 그의 음악적 표현 폭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카덴차(무반주 독주)에선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템포, 고음과 저음의 색채 대비, 깨끗한 터치의 트릴(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 휘몰아치는 에너지로 청중을 압도했다.

2악장에선 무거운 오케스트라 선율과 대조되는 밝고 몽환적인 음색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마지막 악장에선 청아한 색채와 유선형의 울림으로 베토벤의 열정을 드러냈다. 어떤 때는 아주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타건으로, 어떤 때는 깃털을 날리듯 가벼운 터치로 역동적이면서도 활기 넘치는 작품의 맛을 살려냈다.

앙코르 요청에 그가 내놓은 작품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 그는 풍부한 루바토(템포를 자유롭게 연주)와 자연스러운 손 움직임, 명징한 음색으로 동화적이면서도 우아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펼쳐냈다.

40분간의 연주를 끝낸 임윤찬은 영락없는 10대 소년이었다. 정명훈이 자신에게 안기라는 듯 양손을 벌리자 고개를 숙인 채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는 모습이 그랬고, 한 여성이 레고로 만든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자 쑥스럽다는 듯 바로 악장에게 주는 행동 역시 부끄러움 많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정명훈과 뮌헨필이 선보인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이었다. 나폴레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썼다가, 그가 황제가 됐다는 소식에 표지를 찢어버린 바로 그 곡이다. 정명훈은 시종 여유로운 호흡을 가져가면서도 셈여림의 변화를 세세히 조형하면서 악단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저음 현의 풍성하면서도 단단한 울림과 고음 현의 부드러우면서도 고상한 음색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목관과 금관의 명료한 선율이 층을 이루면서 장엄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2악장에선 아련한 음색과 풍부한 양감으로 비애와 애수가 넘실거리는 ‘장송 행진곡’을 들려줬다. 4악장에서 두 개의 주제가 쌓아간 응축된 소리와 음악적 표현을 증폭시키면서 만들어내는 극적인 전개는 영웅을 향한 베토벤의 열망을 부르짖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앙코르곡은 아리랑이었다. 관과 현이 만들어낸 서글픈 음색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제가 생각한 베토벤은 (일평생)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을 겁니다.” 임윤찬이 지난해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놓은 음반 속지에 담아낸 말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베토벤을 들려줬다. 때로는 환상을 그려내듯 맑은 광채로, 때로는 화염처럼 거칠게 내달리는 열정으로.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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